누가 이명박 정부 아니랄까봐 위장전입이 대유행이다. 대통령부터 정부 각료, 대법관 후보에 이르기까지 위장전입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기 힘들 지경이다. 한때 총리 후보도 날려버리던 '중범죄' 위장전입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흠결 축에도 들지 못한다.


정부는 달려 나가는데 국회가 한발 뒤처진 듯 보이니 자존심이 상했나보다. 흔한 부동산 위장전입 대신, 한나라당은 ‘상임위 위장전입’이라는 기상천외한 재주를 선보였다. 사실상 한식구인 친박연대 의원에게 비교섭단체 몫으로 배당된 자리를 챙겨주면서, 껄끄러운 민주노동당 의원을 따돌리는 효과까지 얻었다. 덕분에 민노당은 핵심 상임위로 생각했던 기획재정위원회(재정위)에 의원을 보내지 못하게 됐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재정위에 민노당 의원이 들어오는 게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지난 17대 때 민노당 심상정 전 의원(현 진보신당 대표)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심 전 의원은 정부정책의 허점을 짚어내는 정책자료와 ‘삼성 킬러’로 불렸던 날 선 의정활동으로 재정위의 터줏대감들을 적잖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재정위에 ‘심상정 트라우마’가 있는 셈이다.


겨우 심상정을 안 보게 됐는데, 또 민노당 의원이 들어오겠다니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민노당이 재정위에 보내겠다던 이정희 의원은 “제2의 심상정이 될 그릇”이라며 기대를 받던 차였다. 재정위에 비교섭단체 몫으로 배당된 자리는 3개. 그 중 하나는 재정위 터줏대감 중 하나인 무소속 강운태 의원이 일찌감치 예약해 둔 상태였다.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벌어진 친박연대와 민주노동당의 경쟁에서 한나라당은, 곧 한나라당이 될 친박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재정위에 ‘위장전입’한 이가 또 하필 양정례 의원이다. 돈 공천, 대리 공천 논란과 더불어 떠들썩하게 국회에 입성하더니 상임위 배정마저 위장전입 논란으로 시작했다. 선배 의원들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커리어 관리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 정책이 어김없이 거쳐 갈 재정위는 민노당에게는 최전선이나 다름없다. 그런 재정위의 마지막 한 자리를 의원직 유지조차 확실치 않은 ‘유사 한나라당 의원’이 차지한 셈이다. 이쯤 되면 민노당도 발끈하고 나서는 게 정상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양정례 의원 아닌가.


그런데 의외다. 눈뜨고 코 베인 민노당의 반응도 영 뜨뜻미지근하다. 민노당 강기갑 대표는 “당에서 정무위도 괜찮다는 의견이 있어서 한나라당 안을 받았다”며 말을 흐렸다. 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얘기다. 한 민노당 당직자는 “재정위를 그렇게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하다못해 여론전이라도 한 번 해 봤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아쉬워했다. 아닌게 아니라, ‘제2의 심상정’과 ‘양정례’가 붙어서 양 의원이 이겼다는데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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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합니다"라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안요일씨의 목소리는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다. 촛불집회에 나왔다가 즉석에서 '8.15 평화행동단'에 자원했던 안씨는, 파란색 색소를 잔뜩 뒤집어쓰고 여경들에 빙 둘러싸인 채로 소공로 한가운데 연좌 중이었다.


도로는 모두 경찰이 점령한 상황. 시민을 하도 잡아대느라 닭장차가 모자라지 않았다면, 안씨와 동료 십여명도 15분 전에 연행됐을 거였다. '한 짐'을 비워 낸 호송차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라는 무전이 내 귀에도 안씨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아마도 그 목소리를 기사로 쓸 일도 없을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져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곧 연행되실 것 같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담담합니다." 그는 그렇게 거짓말로 말문을 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광주항쟁때, 그때 제가 광주에 있었습니다. 이건 그때 광주에 버금가는 탄압이에요." 다시 거짓말이다. 8월15일이 골때리긴 했지만 군대도 실탄도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한번도 의심해 본 적 없을 40대 남성이 사복체포조와 색소물대포가 난무하는 거리를 보며 느낀 충격은, 막 박정희 시대를 지나온 1980년의 고등학생이 계엄군을 보며 받은 충격 이상일지도 모른다.


안씨는 데모꾼도 좌빨도 아니다. 그는 현장에서 '8.15 평화행동단'을 모집한단 소리에 즉석에서 자원한 시민이다. 경찰과의 대치선에서 평화적인 연좌농성을 벌이겠다고 모인 이들인데, 한무리의 사복경찰이 이들을 달랑 들고 가는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성추행 시비를 차단하겠답시고 여자 시위자들은 우선 남겨놓았는데, 꽁지머리를 한 안씨는 아마 여성 시위대로 오해를 받았지 싶다.


"이민 신청을 해 놓았어요. 나는 이민가면 사실 그만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이 대책없는 양반아, 떠날수 있으면 얼른 떠나실 것이지 이 무슨.


몇월쯤 이민가실 생각이신가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질문. 단지 기사로 썼을 때 팩트가 비지 않기 위해서만 필요한 질문. 그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경찰 두 명이 안씨의 팔을 잡아끌었다. "집시법 위반으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기자 들으라고 더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사복경찰들이 외쳤다. 호송차가 온 모양이다.


따라가며 재차 물을까 하다가 그만뒀다. 몇달 후면 자신이 살지도 않을 나라 걱정을 하다 연행되는 사람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으로는, 좀 너무한다 싶었다. 8시45분. 경찰의 '진압작전' 개시 45분 후, 인터뷰 시작 3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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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가 글로벌호구로 찬란하게 떠오른 것은 외교부에 비스마르크와 탈레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정부가 도대체 민주국가의 외교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아니 뭐, 민주주의부터 이해 못하는 양반들에게 좀 무리한 선행학습을 요구하는 것 같긴 하다만.


언제 어디서라도 모호성을 유지해야만 하는 게임이 외교고, 국민의 열화와 같은 반발이 오히려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게임이 외교다. "국제신인도를 잃는다"라고 국민을 협박할 게 아니라 "우리가 이 안을 받으면 국민이
정권을 끝장낼 거다"라고 상대국에게 징징대는 게 민주주의 국가의 외교다. 국민이 정권을 끌어내릴 수 있는 국가는, 국내에서 운신의 폭이 좁은 국가는 그래서 협상력이 세다. 말빨 좀 받쳐주고 인맥 좀 있는게 협상력이라는 접근은 그저 낭만적 외교무협지일 뿐, 진짜 협상력은 국내와 국외를 아우르는 역관계와 그를 한눈에 포착하는 정세분석에서 나온다.


이명박표 외교의 본질은 이 게임을 엉뚱하게도 건설사 버전으로 이해해 버리는 데 있다. 밖으로는 건설사 사장이 관료 로비하듯 선물공세와 싸바싸바로 해치우겠다 덤비고, 안으로는 국민의 반대를 귀찮은 노조파업인 양 힘으로 쓸어버린다. 미국에겐 쇠고기를 일본에겐 과거사를. 기름칠 듬뿍 해놨으니 알아서 챙겨주시겠지. 모셔와서 이쁨받으려면 집구석이 시끄러워서야 어디. 모호성은 개뿔, 내부반발도 개뿔.


우리 각하는 머릿속에 '실용 = 기업' 이 등식 하나밖에 없는 양반이니만큼, 실용외교란 게 대충 이런 거라고 봐도 무리없겠다. 결과는? 레임덕 세계기록 달성하며 대형삽질정책 줄줄이 홀드, 못믿을 정권이라는 공감대를 중국과 미국에 공히 주면서 세계 평화에 기여, 허겁지겁 북한에 제안한 식량원조도 거절당하면서 북한의 자립심 고취, 더이상 북풍도 독도도 정권의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않는 성숙한 시민사회 구현...... 어라?


퍼주는 듯 하지만 챙길건 챙긴다. 이거 은근히 실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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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치는가의 싸움입니다.


시민이 쌩쌩하다지만, 사실은 지쳐가는 중입니다. 지친 시민은 집에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격적이 됩니다. 끈질기게 한발 한발 무너뜨리는 대신, 오늘 안에 이번주 안에 결과를 손에 쥐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거리에 선 시민들이 그랬습니다. "언제까지 비폭력이냐!"는 몇몇 시민의 외침에서는 폭력성보다는 짜증과 허탈감이 더 짙게 느껴집니다. 지쳐간다는 얘깁니다.


보수블록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지쳐가는 중입니다. 27일자 조선일보는 "경찰은 청와대만 지키면 다냐"라고 아예 노골적으로 짜증을 부립니다. 누리꾼의 광고 내리기 운동에 조중동이 보여주는 반응은 차라리 히스테리입니다. 가장 든든한 우군인 보수언론이 강하게 나오는 이상 정부도 뒤로 물러서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수요일의 마구잡이 길거리 연행, 다음날 이어지는 고시 강행을 보면 정부 역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원세훈 행안부 장관은 오늘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동아일보 못 보셨어요?"라며 여론이 반전됐다 주장합니다. 추가협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응답이 셋 중 둘 꼴이지만(한겨레 26일자) 이는 애써 외면합니다. 유리한 근거만 부여잡고 상황 반전에 성급하게 나서는 모습 역시 지쳐간다는 징후입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너무 성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거리의 시민과 보수블록 모두 한없이 강경해져만 가는 건, 속으로는 모두 지쳐가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명분싸움이었던 이 판은 명분을 잃는 쪽이 집니다. 자제력이 센 쪽이 이긴다는 건데, 그렇다면 결국 체력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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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업이 판매한 라면에서 너트(암나사)가 나왔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라며 주요 일간지 지면을 통해 혼쭐도 났다. 그런데 소비자는 불매운동은커녕 ‘구매 운동’을 벌인다. 주가마저 연일 오름세다. 이쯤 되면 상식에 대한 반란이다. 이 희한한 ‘반란’의 주인공은 삼양식품, 조연은 조선일보와 농심이다.


사연은 이렇다. 조선일보가 6월17일에 게재한 “삼양 ‘너트 라면’에 소비자 화났다”는 기사가 누리꾼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생쥐, 금속 칼날에 이어 나사까지”라는 표현을 썼다. 이를 통해 쥐 머리와 칼날(각각 농심과 동원 제품에서 나왔다) 또한 삼양 제품에서 나왔다는 인상을 줬다는 게 누리꾼의 주장이다. 신문에 광고를 싣는 농심의 허물은 덮어주는 대신 광고를 하지 않는 삼양을 ‘죽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여기에 농심 상담원이 조선일보 광고 게재에 항의하는 고객에게 “조선일보는 계속 번창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답변 이메일을 보내는 일까지 겹쳤다. 그에 따라 조선일보를 곱지 않게 보는 누리꾼의 여론이 ‘농심 불매, 삼양 구매’라는 소비자운동으로 옮아붙었다.


누리꾼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 등에서는 “6월21일은 ‘삼양데이’다”라며 삼양라면 한 박스 사기 운동을 벌이자는 논의가 오갔다. 촛불집회 때 종이컵 대신 삼양컵라면 컵으로 촛불을 감싸자는 의견도 호응을 얻었다. ID ‘잠실늘푸름’은 분식집이 라면시장의 핵심이라며 “다섯 군데를 돌아다녀서 겨우 삼양라면으로 장사하는 집을 찾았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복잡한 표정이다. 쏟아지는 시민의 격려와 관심은 분명히 호재다. 삼양식품 최남석 홍보팀장은 “15년간 홍보 일을 했지만, 주류 언론에 비판받았다고 격려가 쏟아지는 경우는 처음이다”라며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연일 상한가를 치는 주가를 두고도 “너트가 나와서 주가가 떨어지면 떨어졌지 다른 인상 요인은 없다”라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안티조선 기업’으로 기억되는 건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 팀장은 “우리는 원래 TV 광고에 주력하고 신문 광고 물량이 거의 없다. 조선일보를 콕 찍어 광고를 안 준 건 아닌데 소비자가 오해를 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반면 ‘유탄’을 맞은 농심은 홈페이지에 “고객의 의견을 존중하여 광고를 자제하겠다”라는 공지를 올렸다. 뭔가 기묘하게 뒤바뀐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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